사법개혁이라는 오명의 사법 쿠데타
법치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치주의의 언어를 빌려 법치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법왜곡죄'와 '국민법감정'을 앞세운 일련의 사법 압박 입법들, 그리고 대법관 증원 카드까지,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그 본질은 사법부를 정치 권력의 하위 기관으로 복속시키려는 노골적인 시도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다. 이것은 쿠데타다. 다만 총칼 대신 법안과 여론을 무기로 삼는 쿠데타일 뿐이다.

'국민법감정'이라는 개념의 위험한 정체부터 짚어보자. 민주당은 수사와 재판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이 표현을 꺼내들었다. 이재명에 대한 각종 판결이 나올 때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국민법감정에 반한다'는 말이 어김없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 개념의 정체를 냉정하게 해부해보면, 그것은 법이 아니라 정치다. 감정이 아니라 조작이다. 법학적으로 국민법감정은 입법의 참고 요소로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기능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합의가 법 제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이미 살아있는 재판, 진행 중인 수사, 확정된 판결에 대해 '국민법감정'을 들이밀며 결과를 뒤집으려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삼권분립의 부정이고, 법관 독립의 파괴이며, 민주주의 헌정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국민법감정'이 실제로는 국민 전체의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민주당 지지층의 감정이고, 이재명을 둘러싼 친위 세력의 감정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재명의 유죄 판결에 대해 법원이 제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 그 국민들의 법감정은 어디로 갔는가. 국민법감정은 선택적으로 소환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때만 국민의 이름이 등장하고,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국민은 사라진다. 이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이용하는 정치다. 이제 법왜곡죄를 이야기해야 한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의 골자는 법조인이 법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잘못된 수사나 판결을 했을 경우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권력 앞에 굴종하는 법조인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설계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본질이 드러난다. 누가 왜곡을 판단하는가. 결국 정치권이다. 다수당이다. 민주당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북한의 형사법 체계를 떠올려야 한다. 북한 형법 제244조에는 이른바 '부당판결죄'라는 조항이 존재한다.

판사나 검사가 당의 노선에 반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형사 처벌을 받게 되는 조항이다. 북한에서 법관이 당의 뜻과 다른 판결을 내리면 그것은 곧 범죄가 된다. 법관은 처벌이 두려워 권력의 눈치를 보고, 독립된 판단 대신 정치적 계산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법이 존재하되 정의는 없는 사회다. 민주당의 법왜곡죄가 이것과 무엇이 다른가. 다수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린 법관을 법을 왜곡했다는 명목으로 기소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법관은 앞으로 어떻게 판결하게 될 것인가. 그들은 법전이 아니라 여의도를 바라보며 판결문을 쓸 것이다. 국민의 정서가 아니라 집권 다수당의 눈치를 살필 것이다. 이것이 북한의 부당판결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지 그것이 서울 여의도에서 출발했다는 지리적 차이뿐이다. 본질은 동일하다. 사법을 정치의 도구로 만드는 것,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대법관 증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정원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인 명분은 늘어난 사건 수에 비해 대법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분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2011년을 기억하는가.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대법관 증원을 추진했다. 그때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며 막아선 것이 바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전신, 당시 민주당 계열 정당들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명쾌했다.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고, 대법원을 정치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당이 대법관 임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은 옳았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반발을 수용하고 물러섰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논리를 들고 싸웠던 바로 그 민주당이, 이제 거대 여당이자 입법부의 절대 다수를 점하게 되자 태도를 180도 바꾸었다. 2011년에 자신들이 막아냈던 바로 그 카드를 이제는 자신들이 꺼내들고 있다. 그것도 훨씬 더 공격적으로, 훨씬 더 노골적으로. 이 위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정치적 편의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뻔뻔하다. 대법관 증원의 진짜 목적은 명백하다. 현재 대법원은 민주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내려주지 않고 있다. 이재명 관련 사건을 비롯해 민주당에 불리한 판결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고 그 자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운다면 어떻게 되는가. 대법원의 성격 자체가 바뀐다. 판결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것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7년에 시도했다가 자국 내에서도 법원 패킹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쓰며 실패한 바로 그 시도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루스벨트조차 실패한 이유는 미국의 민주주의적 전통과 언론, 그리고 상식을 가진 유권자들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지금 이것을 허용할 것인가. 법원 패킹, 즉 사법부 장악을 위해 법관 수를 늘리는 시도는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권위주의로의 퇴행을 알리는 가장 전형적인 신호로 기록되어 있다. 헝가리의 오르반 정권이 헌법재판소를 장악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폴란드의 법치주의 위기가 시작된 것도 사법부 구성을 정치권이 통제하면서부터였다. 민주당은 지금 대한민국을 그 길 위에 올려놓으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모든 시도를 사법 개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사법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그 논의는 진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법관의 책임성을 높이고, 재판 과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과제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은 개혁의 탈을 쓴 정치 보복의 제도화다. 타이밍을 보라.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이 법안들은 왜 하필 이재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에 본격화되었는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보라. 2011년 한나라당의 대법관 증원 시도를 막아냈던 논리, 즉 사법부 독립 수호라는 그 논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더 위급하다. 당시 한나라당은 그 시도를 여론의 압박에 굴복해 포기했다. 민주당은 포기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밀어붙이고 있다. 거대 의석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정당성도, 역사적 일관성도,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이 강행하고 있다. 역사는 이런 시도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록하고 있다. 사법을 장악하려 했던 권력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회는 예외 없이 부패하고 침몰했다. 법이 정치의 시녀가 된 사회에서는 오늘의 권력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된다. 그 칼은 반드시 만든 자에게 돌아온다. 민주당이 이 단순한 역사적 교훈을 모른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강행하려 한다면 오만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는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 시험은 국민의힘이 풀어야 하는 시험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입법권을 행사하고 있는 민주당이 풀어야 하는 시험이다. 그리고 그 시험의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사법을 독립시켜라. 판사가 법전만 보고 판결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라.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항소와 상고라는 절차를 밟아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것이 법치다. 국민법감정을 내세워 사법부를 겁박하고, 법왜곡죄를 만들어 법관의 입을 틀어막고, 대법관 증원으로 대법원의 구성 자체를 뒤흔들려는 이 삼중의 사법 장악 시도는 지금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이것은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법이 법으로서 존재할 수 있느냐, 아니면 권력의 장난감으로 전락하느냐의 문제다.

2011년 민주당이 옳았다. 대법관 증원은 사법부를 정치화한다고 외쳤던 그 민주당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스스로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인가. 아니면 그때의 반대가 처음부터 신념이 아니라 정략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인가. 어느 쪽이든, 그 답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늘 민주당이 만드는 이 칼은, 내일 반드시 누군가의 목을 겨누게 될 것이다. 법은 감정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법은 원칙으로 판단한다. 그 원칙을 내팽개친 자들이 법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