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유죄, 그것도 판결이라 부를 수 있나

오세훈 유죄, 그것도 판결이라 부를 수 있나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벌금 1000만 원, 시장직 상실형이 선고됐다.

그 자체는 새로울 것 없는 뉴스다. 놀라운 것은 그 벌금형을 떠받치는 논리 구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의 판결문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과연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을 통과한 판결인지 의문이 든다.

문화일보 출처

판결문에는 '보인다·보여·보이는' 계열 표현이 36차례, '판단된다' 계열 표현이 7차례 등장한다.

계좌이체 내역과 통화기록, 카카오톡 메시지 같은 객관적 증거가 확인해준 것은 여론조사가 실제로 이뤄졌다는 사실과 돈이 오갔다는 사실뿐이다.

오 시장 측이 여론조사를 의뢰했는지, 대납을 인지하고 있었는지는 전부 정황을 쌓아 올려 도출한 추론이다.

재판부는 김한정 씨가 1000만 원을 송금한 이유에 대해 "오세훈 측 요청이 없었다면 입금할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썼다.

이건 증거가 아니라 상식적 추측이다.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정무부시장의 공모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 어떤 대화로 공모했는지 판결문 어디에도 적시돼 있지 않다. 강 전 부시장이 대납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근거로, 오 시장도 "당연히" 알았을 것이라는 식의 연쇄 추론이 유죄의 근간을 이룬다. 여기서 짚어야 할 원칙이 있다. 대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부정한 적이 없다. (다법원 96도1783 판결)

다만 그 정황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죄를 증명해야 한다는 조건을 일관되게 걸어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에는 정작 '여지가 있다', '가능성이 있다', '불분명하다'는 표현도 함께 등장한다.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문장과 유죄를 선고하는 결론이 한 판결문 안에서 나란히 존재하는 셈이다.

정황 A가 정황 B를 뒷받침하고, 정황 B가 다시 정황 C의 근거가 되는 식으로 추론의 사슬을 늘려간다고 해서 그 사슬 전체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으로 승격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심증주의는 판사에게 증거를 자유롭게 평가할 권한을 준 것이지, 심증만으로 유죄를 만들어낼 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핵심 증인 명태균 씨에 대한 재판부의 태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재판부는 그의 진술에 "일부 과장되거나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객관적 자료와 부합하는 진술에 한해" 신빙성을 인정했다. 문제는 이 선별적 신빙성 인정이 자의적으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어떤 대목에서는 거짓말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진실을 말한다고 가정할 때, 그 경계를 나누는 기준이 재판부의 내부적 판단 외에 무엇으로 검증되는가. 진술의 신빙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방식 자체는 실무에서 흔하지만, 그 진술이 유죄 인정의 최후 근거로 작동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세훈 측이 "천하의 거짓말쟁이 명태균의 진술과 간접 증거만을 증거로,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고 반발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같은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을 두고 나온 다른 하급심 판단이다. 김건희 여사(이하 '김건희')는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여론조사 결과가 윤석열·김건희 부부에게만 제공됐다고 보기 어렵고, 김건희가 조사 과정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봤다. 똑같이 명태균이라는 인물, 똑같이 여론조사라는 소재, 똑같이 직접 증거 부재라는 조건 속에서 한쪽은 무죄, 한쪽은 시장직 상실형이 나왔다. 이 차이를 만든 것이 각 사건의 개별적 증거 구조 때문인지, 아니면 재판부마다 정황증거를 대하는 태도의 온도차 때문인지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사건들을 함께 회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법이 같은 잣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심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법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다. 나는 오세훈이라는 정치인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다만 형사 판결이라는 것은 결과의 정당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유죄를 선고하려면 그 유죄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어야 한다는 절차적 엄격함이 함께 지켜져야 정당성을 갖는다. 개인의 자유는 국가 권력, 특히 사법 권력 앞에서 가장 취약하다. 그리고 자유를 박탈하는 절차가 허술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그 허술함은 언젠가 누구에게든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은 오세훈이지만 내일은 다른 누구여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정황을 쌓아 결론을 만드는 방식이 법정에서 관행이 된다면, 그 다음은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항소심은 이 판결문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황증거의 연쇄가 어디까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그 기준선을 다시 그어야 한다. 이는 오세훈 개인의 거취 문제를 넘어서는, 형사사법 체계 전체의 신뢰도가 걸린 문제다.

2심에선 부디 정상적인 판결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