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는 자물쇠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간행물 정가 표시 및 판매)
① 출판사가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물을 발행할 때에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이하 "정가"라 한다)을 정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간행물에 표시하여야 한다.
1.서론
나는 어제 메가스터디(인터넷 강의 업체) 교재를 샀다. 한 권에 이만원을 넘긴다. 종이값, 인쇄비, 제본비, 트럭에 실어 창고에 쌓고 전국으로 뿌리는 물류비. 물성을 가진 상품이 비싼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참는다.
그런데 같은 책을 eBook으로 사려고 눌러보면 실소가 터진다. 종이도 인쇄도 트럭도 창고도 없는, 서버에서 복제 비용이 사실상 0에 수렴하는 파일 한 덩어리가 17,000원.
상품의 실체가 통째로 증발했는데 값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이건 시장의 실패가 아니다. 시장을 실패하도록 설계한 제도의 결과다. 그 설계의 이름이 도서정가제다. 이 글은 그 제도가 어떤 논리로 정당화되었고, 실제 데이터에서 어떻게 무너지며, 왜 특히 전자책 시대에 이르러 존재 이유를 완전히 상실하는지를 끝까지 따져보려 한다.
2. 도서정가제?
저 이 제도가 법체계 안에서 얼마나 특이한 존재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대한민국 공정거래법은 제조업자가 유통업자의 판매가격을 강제하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가격은 시장에서 경쟁으로 결정되어야 하며, 상류 사업자가 소매가를 못박는 건 경쟁 제한 행위라는 게 근대 경쟁법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바로 이 금지의 예외로 존재한다. 즉 책이라는 상품에 한해, 나라가 "가격 경쟁을 하지 마라"고 법으로 허가해 준 것이다.

현행 제도의 핵심은 단순하다. 신간·구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도서의 할인율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한다. 그마저도 직접 할인은 10%, 나머지 5%는 포인트 적립 등 간접 혜택으로 채우는 구조라 소비자가 체감하는 현금 할인은 사실상 10% 언저리다. 이 15% 자물쇠가 2014년 11월에 채워졌다. 2014년 4월 세월호 정국의 소란 속에서 최재천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이전까지는 신간이라도 최대 19%까지, 구간과 실용서는 사실상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 이 개정은 명백한 '할인 축소'였다.
명분은 그럴듯했다. 대형 자본의 출혈 할인 경쟁에서 동네 서점과 중소 출판사를 지키고, 관행적 할인을 전제로 부풀려진 정가를 정상화하며, 그렇게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호한다는 것. 문제는 이 아름다운 명분이 10년의 실측 데이터 앞에서 어떻게 되었는가다.
3. 소비자에게 청구된 계산서
가장 권위 있는 실증은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 나왔다. 저자가 직접 구축한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도서정가제 강화는 베스트셀러의 판매가격을 16.2% 인상시켰고, 스테디셀러의 판매가격은 40% 이상 인상시켰으며, 전체 도서 판매량을 12.1% 감소시킨 것으로 추정됐다.
이 연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소비자후생의 감소 규모와 가격규제로 인한 사중손실의 크기까지 추정했다. 경제학에서 사중손실이란 '누구에게도 가지 않고 그냥 증발해 버린 사회적 후생'을 뜻한다. 즉 이 제도는 소비자 지갑에서 돈을 빼내 누군가에게 옮긴 정도가 아니라, 거래 자체를 위축시켜 사회 전체의 후생을 순수하게 파괴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옮겨간 돈은 누구에게 갔는가. 여기서 제도의 원래 목적이 완전히 배반당한다. 도서정가제의 표면적 수혜자는 '동네 서점'이어야 했다. 그러나 학술 실증은 정반대를 가리킨다. 이용관의 2022년 연구(사회과학논집)는 통계청 서비스업조사와 경제총조사를 연계해 서점 규모별 성과를 분석했는데, 결과는 개정 이후 대형서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은 오히려 중형서점에서 감소했다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냉정하다. 도서정가제 개정이 중소형서점과 대형서점 간의 성과 격차를 축소하기보다는, 특정 규모·유형의 서점 성과에만 영향을 주었다는 것.
원리는 간단하다. 어디서 사든 값이 똑같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서점을 고를까. 포인트가 쌓이고, 배송이 빠르고, 일정액 이상이면 배송비가 면제되는 곳을 고른다. 가격 경쟁이 사라진 시장에서 남는 경쟁축은 '규모의 편의'뿐이고, 그 편의는 오직 대형 온라인 서점만이 제공할 수 있다. 가격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법으로 빼앗긴 순간, 동네 서점은 대형 플랫폼과 싸울 링 자체를 잃는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던 제도가, 약자에게서 마지막 무기를 압수해 강자에게 헌납한 셈이다.
4.그들의 주장
공정한 비판이라면 상대의 가장 강한 논거를 피하지 않아야 한다. 도서정가제 옹호의 최전선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서점 단체가 있고, 이들은 결코 근거 없이 주장하지 않는다.
첫째, 다양성 지표다. 문체부는 신간 발행 종수가 2014년 6만7천여 종에서 이후 7만여 종으로 4.5% 증가했고, 재정가 제도를 통해 1만여 권의 구간 도서 가격이 41.4% 하락했다고 밝혔다.
둘째, 독립서점의 부활이다. 음료를 팔거나 문화행사를 여는 독립서점이 새로 문을 열었고, 전통적 동네서점의 감소세는 2014년을 기점으로 둔화됐다는 것.
셋째, 국제 정합성이다. OECD 35개 회원국 중 독일·프랑스·일본 등 14개국이 출판문화 보호를 위해 한국보다 먼저 이 제도를 도입·시행하고 있으니, 한국만의 기이한 규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들어줄 만하다. 그러나 하나씩 뜯어보면 이 방어선은 생각보다 얇다.
'신간 종수 4.5% 증가'는 다양성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종수와 다양성은 다르다. 실제로 늘어난 것은 자기계발서·재테크서처럼 회전이 빠른 상업 서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하고, 반대로 인문·과학·문학의 전집이나 대형 기획은 판매량 위축 속에 중단·무기한 연기된 사례가 적지 않다. 판매량이 12.1% 줄어든 시장(KDI)에서 종수만 늘었다면, 그건 '한 종당 더 안 팔리는' 얇고 납작한 다양성이다. '재정가로 41.4% 인하'라는 수치도 화려하지만, 재정가 대상은 이미 시장에서 죽은 구간 도서에 집중되고 신간에는 적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소비자가 실제로 사고 싶어 하는 신간의 가격은 요지부동인 채, 안 팔리던 헌 재고의 명목가격만 깎아 통계를 장식한 것에 가깝다.
'독립서점 부활' 역시 인과를 조심해야 한다. 카페형·큐레이션형 독립서점의 증가는 소비 트렌드와 창업 문화의 변화이지, 15% 할인 규제가 만들어낸 결과라는 인과의 증거는 빈약하다. 오히려 같은 기간 대형서점만 살쪘다는 실증(이용관)이 나란히 존재한다.
5. 해외?
옹호론의 최종 방어선은 늘 국제 사례다. "정가제를 없앤 나라는 대형 자본이 다 쓸어가고 동네 서점이 몰살당했다"는 것. 이 서사의 단골 소재가 영국이다. 영국은 100년 가까이 유지하던 순가격협정을 1990년대에 대형 서점 체인들이 이탈하며 사실상 붕괴시켰고, 1997년 제한적거래관행법원이 공익에 반한다며 위법으로 판결했다.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흥미롭게도 결과는 양쪽 진영의 단순 서사를 모두 배반한다. 폐지론자의 기대와 달리, 할인이 더 깊고 넓어졌음에도 공식 물가지수상 책값은 이후 일반 물가상승률보다 더 많이 올랐다. 동시에 옹호론자의 공포대로 협정 붕괴는 대형 서점 체인을 강화시키고 독립서점을 위축시킨 면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옹호론의 핵심 논거가 결정적으로 깨진다. 위키피디아의 서술을 빌리면, 시장 집중과 독립서점의 쇠퇴는 정가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독일·프랑스 같은 경제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즉 정가제를 폐지한 영국에서도, 정가제를 유지한 독일·프랑스에서도 동네 서점은 무너졌다. 그렇다면 동네 서점을 죽인 진짜 원인은 '정가제 유무'가 아니라 아마존과 온라인·대형화라는 유통 혁명 그 자체였다는 결론이 자연스럽다. 정가제는 이 거대한 흐름을 막지 못하면서, 그 대가로 소비자에게 항구적인 가격 부담만 지웠다. 지키지도 못할 것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확실한 비용만 청구한 것이다.
6. 전자책(eBook)
지금까지의 모든 모순이 가장 노골적으로 응축되는 곳이 바로 전자책이다. 종이책이라면 그나마 물류·재고·반품이라는 실물 비용이 있어 정가제의 '유통 질서 보호' 명분이 희미하게라도 성립한다. 그러나 전자책에는 그 명분의 물적 토대 자체가 없다. 재고도, 반품도, 물류도, 절판도 없다. 한 번 만든 파일을 무한히 복제해 배포하는 상품에 종이책의 유통 질서를 지킨다는 논리를 갖다 대는 것은 범주 오류에 가깝다.
그런데도 15% 자물쇠는 전자책에 똑같이 채워진다. 여기에 출판사의 이중 계산이 겹친다. 전자책 출간 시 출판사의 영업이익률이 종이책보다 낮아진다는 이유로 정가를 종이책의 70~80% 이하로 낮출 수 없다고 항변하지만, 실상은 종이책 매출 잠식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전자책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심지어 종이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기본 10% 할인이 붙지만, 전자책은 정가 그대로 파는 책이 많아 두 가격 차이가 더 좁혀진다.
위로는 출판사가 종이책 보호를 위해 정가를 높게 잡고, 아래로는 도서정가제가 할인의 바닥을 막는다. 소비자에게 남는 것은 '전혀 싸지 않은 전자책'이다. 게다가 그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도 소비자가 손에 넣는 것은 완전한 소유가 아니다. 강력한 DRM이 걸려 원본 파일을 개인 기기에 영구 저장하는 것은 약관상 막혀 있고, 소비자가 산 전자책은 사실상 '소유'가 아니라 한시적 '접근권'에 불과하다. 실체가 없는 상품을, 소유하지도 못하면서, 실물과 거의 같은 값을 내고, 법이 할인마저 막아준 덕에 깎아주지도 못하게 되어 있는 것 — 이것이 학생이 교재 한 권 아끼려다 마주하는 현실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정부조차 최근 이 모순을 사실상 자인했다. 웹툰·웹소설 같은 전자출판물을 도서정가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에 종이 시대의 가격 통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제도의 관리자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신호다.
7. 정치적 책임
제도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강화된 도서정가제의 이름표에는 발의자와 통과시킨 다수의 손이 남는다. 앞서 말했듯 이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사람은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오늘의 더불어민주당)의 최재천 의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발의 논리다. 그는 "신간은 최대 19%, 구간과 실용서는 무제한 할인이 가능해 도서정가제가 유명무실하다"며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즉 소비자에게 돌아가던 할인의 폭이 넓다는 것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 규정한 것이다.
정책은 선의로 시작해도 실패할 수 있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패의 신호가 데이터로 축적되고(KDI의 가격 상승·판매량 감소, 이용관의 대형서점 편중), 2019년 도서정가제 폐지 국민청원이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공론화되는 동안, 발의자의 책임 있는 재설계나 대응은 뚜렷하지 않았다. 정책 실패보다 무거운 것은 명백해진 실패를 방치하는 정치적 태만이다. 그리고 이 태만의 책임은 대표발의자 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당시 이 법을 통과시킨 정치인(가장 하단에 목록) 모두가 소비자에게 청구서를 떠넘긴 공범이다. 특정 진영을 겨냥하려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비용으로 특정 업계의 명분을 사준 정치의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8. 결론
지키겠다던 동네 서점 대신 대형 온라인 서점만 배를 불렸고, 정가제를 유지한 나라에서도 동네 서점은 똑같이 무너졌다는 사실은 이 제도의 핵심 명분이 인과적 허구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모든 부조리는 물류도 재고도 없는 전자책에서 가장 벌거벗은 모습으로 폭로된다.
책의 다양성과 창작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는 목표 자체는 옳다. 다만 그 목표를 '소비자의 할인 금지'라는 무딘 칼로 달성하려는 방식이 틀렸을 뿐이다. 생태계를 지키려면 소비자에게 벌금을 물릴 게 아니라, 창작자에 대한 직접 지원, 도서관 구매 예산 확대, 중소 출판·독립서점에 대한 세제·유통 지원처럼 부담을 사회가 함께 지는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적어도 유통 질서 보호라는 명분조차 성립하지 않는 전자책에서만은, 이 낡은 자물쇠를 지금 당장 풀어야 한다.
파일 한 덩어리를 만원 가까이 받아먹는 것이 '정상'이 된 세계. 그 정상성의 뿌리에 도서정가제라는, 종이 시대에 채워져 디지털 시대까지 녹슨 채 걸려 있는 자물쇠가 있다.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최재천의원 등 16인) 의안번호 : 1903267
대표발의자 : 최재천 (더불어민주당)
공동발의자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핵심공범
이상직 (문재인 뇌물사건 핵심 공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배기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
김재윤 (2015년 뇌물로 징역 4년)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강동원
이석기 (통합진보당 사건의 주범 내란선동 사건으로 징역9년)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전반기 국회 부의장)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박주선
남경필 (국민의힘)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현 법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