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심의는 인민재판이다.

학교폭력심의위원회 결과가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전형에 의무 반영되면서, 학폭 처분은 더 이상 '교육적 지도'라는 이름의 가벼운 조치가 아니게 되었다.
서면사과 한 장이 학생의 진학 경로를 바꿀 수 있는 시대에, 심의 절차는 여전히 형사재판 수준의 증거 기준도, 방어권 보장 장치도 갖추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증거 기준의 부재다. 심의위원회는 대면 심의를 원칙으로 하되 진술서, 메시지 내역,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해 사실관계를 판단하는데, 물증이 부족한 사안에서도 진술의 정황과 신빙성만으로 처분이 내려지는 사례가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심의위원회는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 등을 위해 학교폭력예방법과 시행령에 따라 심의를 진행하며, 사안조사 단계에서 진술서·메시지·CCTV·목격자 진술이 처분의 기초자료가 된다. 문제는 형법상 명예훼손조차 성립 요건이 까다롭고 반의사불벌죄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학폭 절차에서는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언행까지 조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모욕죄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판단되며, 험담이나 뒷담화도 교육적 차원에서 조치 대상이 되어 서면사과나 특별교육 이수 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형사법정이라면 무혐의로 끝날 사안이 학폭 처분에서는 생기부에 남는 불이익으로 확정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적 결함은 이미 통계로 드러나고 있다. 처분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가해 학생 측 건수는 2020년 478건에서 2022년 868건으로 급증했고, 같은 기간 집행정지 인용률은 절반을 넘어섰다가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는 2020년 478건에서 2021년 731건, 2022년 868건으로 증가했으며, 가해 학생의 집행정지 신청은 2명 중 1명 꼴로 인정되어 인용률이 53%에 달했다. 행정소송 역시 서울행정법원 접수 건수가 2022년 51건에서 2025년 134건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늘었고,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학폭 전담 재판부를 2곳에서 4곳으로 확대했다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학폭 사건은 2022년 51건, 2023년 71건, 2024년 98건, 2025년 134건으로 해마다 50% 가까이씩 늘고 있으며,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학폭 전담 재판부를 2곳에서 4곳으로 늘렸다. 결국 상당수 사안이 심의위원회 단계에서 종결되지 못하고 결국 법원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심의위원회가 1차 판단 기구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있는 셈이다.

이의 신청 사건에서 처분이 취소·감경되는 비율도 낮지 않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가해 학생이 제기한 행정소송 325건 중 승소는 57건, 승소율 18%였다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가해자가 제기한 학교폭력 행정소송 건수는 325건이며 이 중 패소가 268건(82%), 승소는 57건(18%)으로 나타났다.
18%라는 수치는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열 건 중 두 건 가까이가 애초에 심의위원회의 사실 인정이나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법원과 행정심판위원회는 출석 통지 누락, 의견 진술 기회 미보장, 위원 제척·기피 규정 위반 같은 절차적 하자와 비례·평등 원칙 위반 같은 실체적 하자를 근거로 처분을 취소해왔다
절차적 하자는 출석 통지가 적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당사자에게 충분한 의견 진술·증거 제출 기회를 부여하지 않아 방어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한 경우를 말하며, 위원회 구성상 제척·기피·회피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면 처분의 절차적 위법성이 인정될 수 있다.
사례로 보자.
수원지방법원 2024. 12. 5. 선고 2023구합72630
경기도이천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2023년 당시 D초등학교 6학년 4반 A학생에게 서면사과, 피해학생 및 신고·고발학생에 대한 접촉·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학교에서의 봉사 4시간의 처분을 내렸다.

그 이유는 학생에게 신체 폭행·언어폭력·따가운 시선 세 가지이다.
그러나 해당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세 가지 행위 중 하나(피해학생을 쏘아본 행위)는 애초에 그 대상이 피해학생인지조차 진술만으로 특정되지 않아 처분사유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심의위원회는 심각성·지속성·고의성을 모두 '낮음'으로, 반성 정도는 '높음'으로 평가하고도 학교봉사 처분을 의결했는데, 법원은 두 학생이 상당 기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피해학생이 거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정황, 그리고 처분사유 중 일부가 아예 인정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처분 전체를 비례원칙 위반으로 취소했다. 심의위원회 스스로 사안을 '경미하다'고 평가하고서도 재량권 일탈에 이르는 처분을 내렸다는 것은, 양정 기준의 적용이 위원회마다, 사안마다 얼마나 자의적으로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또 하나를 더 보자.
부산지방법원 2023. 1. 12. 선고 2022구합21970
집단 따돌림을 당하던 고등학생이 자신의 친한 친구 서너 명에게 개인 메시지로 '나 학폭 열었다'는 취지로 알리고 SNS에 힘든 심경을 담은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심의위원회로부터 피해학생들에 대한 서면사과 처분을 받았다. 게시물에는 상대방의 이름도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발설 상대도 오랜 친구 서너 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심의위원회는 이를 '학교폭력 관련 내용을 공공연히 발설한 행위'로 판단해 조치를 의결했다. 법원은 사춘기 학생이 갑작스러운 따돌림을 당한 뒤 친한 친구에게 힘든 사정을 털어놓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발설의 경위·구체적 상황·정확한 발언 내용조차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분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처분 자체를 취소했다.
애초에 형사법정이었다면 특정성도, 공연성도,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되기 어려웠을 사적인 대화가, 학폭 심의 단계에서는 '발설'이라는 이름만으로 조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는 심의위원회가 형법상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조차 따지지 않은 채 훨씬 넓은 기준으로 처벌하고 있다는 지적이, 추상적 우려가 아니라 실제 처분·소송 사례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결론은 명확하다. 처분의 무게는 이미 사법적 불이익 수준으로 커졌는데, 그 처분을 내리는 절차는 사법 절차가 갖춘 최소한의 방어권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면적인 사법 이관, 즉 학폭 사안을 소년부 판사나 별도 전담 재판부가 처음부터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이 가장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주장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미 서울행정법원이 학폭 전담 재판부를 신설해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 기관이 이 문제를 떠안을 역량과 필요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전면 사법화가 당장 어렵다면 최소한의 절충이 시급하다.
첫째, 심의위원 구성에 법조인·수사 경력자를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포함시켜 증거 판단의 전문성을 담보해야 한다.
둘째, 형법상 불기소·무혐의로 종결될 수준의 사안은 학폭 처분에서도 별도의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거나, 처분 이전에 법률 전문가의 사전 검토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전국 교육지원청마다 제각각인 심의 기준과 처분 양정을 표준화해 지역 간 편차를 없애야 한다.
지금처럼 진술 하나로 인생이 갈리는 구조를 방치한 채 대입 반영만 강화한다면, 심의위원회는 앞으로도 법원행 사건의 '예심 기관' 역할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