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을 보고

암살자(들)을 보고

오늘 암살자(들)을 보고왔다.

제목에 괄호가 있다. 〈암살자들〉이 아니라 〈암살자(들)〉이다. 나는 이 괄호가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괄호가 하는 일?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고, 현장에서 붙잡힌 문세광은 그해 겨울 제목에 괄호가 있다. 〈암살자들〉이 아니라 〈암살자(들)〉이다. 나는 이 괄호가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형당했다. 수사 당국의 결론은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단독 범행이었다.

허진호 감독의 〈암살자(들)〉은 이 결론에 괄호를 친다. 형사 철구(유해진)와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이 사라진 탄환의 행방을 따라간다. 그 길 위에 중앙정보부와 정권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가설이 놓인다.

영화는 약 140분 내내 단수와 복수 사이를 서성인다. 암살자가 한 명이었다고도, 여럿이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참 애매하고 참 이상했다

영화로서

만듦새만 놓고 보면 허술한 영화가 아니다. 정말 재미있고 배우들의 라인업과 연기실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영화 러닝타임 내내 너무 재미있고 몰입감있게 감상했다. 토론토 영화제 국제 관객상 3위, 개봉 11일 만의 200만 관객이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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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었던 일본인과 유해진 씨와의 총격전이 작품 후반부쯤에 나오는데 정말 음향 하나하나 그리고 표정 연기가 정말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것을 느끼었다.

영화 내내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보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집중이 너무 잘 되어서 그렇다. 계속 긴장을 하니 생리현상도 못 느끼었다.


그런데 작중에서 굳이 크게 관련도 없는 김대중을 너무 억지로 넣은게 아닌가 싶다. 또한 실제로 역사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너무 많다. 본인만의 음모론과 본인만의 사이비 사상을 너무 당연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영화로써 보고싶지만 영화의 힘은 너무 강력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암살자들을 본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느낄 것이다.

근데, 추적극은 잘 만들수록 위험하다. 관객은 추적에 몰입하는 동안 추적의 전제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심용환씨가 이 영화의 역사적 근거와 고증이 부실하다고 지적한 대목이 그래서 가볍지 않다.

한겨레, [단독 인터뷰] ‘암살자(들)’ 감독 “박정희 대통령 배후 전제하고 만든 영화 아니다”

질문만 던졌다는 변명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입장문을 냈다.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배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독도 대통령이 시켰다는 내용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호평한 평론가는 의문을 제기하되 결론을 확정하지 않은 점을 미덕으로 꼽았다.

나는 바로 그 지점이 이 영화의 가장 약한 곳이라고 본다. 규정하지 않은 것과 암시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 주장은 반박할 수 있다. 암시는 반박할 대상이 없다. 근거를 대라고 하면 그렇게 말한 적 없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탄환을 둘러싼 의문 자체는 영화가 지어낸 것이 아니다. 그날 합창단석의 여고생이 경호원의 총탄에 숨졌다는 사실도 기록에 있다. 국가의 발표에 빈틈이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빈틈이 있다는 것과, 그 빈틈에 누가 서 있었는지를 가리키는 것 사이에는 증거가 필요하다. 영화는 증거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분위기를 놓았다.

질문에는 방향이 있다. 어느 쪽을 보며 묻느냐가 이미 절반의 답이다. 12세 ~ 50살 정도의 관람자들은 1974년을 교과서 한 줄로만 아는 세대다. 그들이 극장을 나서며 들고 가는 것은 물음표가 아니라 인상이다.

그래도 상영 중단에는 반대한다

암살자(들) 파문…박정희재단 “상영중단” 박근혜측 “패륜” [출처:중앙일보]

그렇다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내리라는 요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지난 며칠 벌어진 일을 적어 본다. 보수단체는 상영 중단을 요구하며 주연 배우의 집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관객에게 나눠 준 기념 티켓을 문제 삼아 제작 책임자를 고발한 사람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감독을 국정감사에 부르자는 말이 나왔다. 무대인사는 전부 취소됐고, 호평한 평론가의 리뷰 영상은 댓글 수천 개가 달린 끝에 비공개가 됐다.

비판과 제재는 다르다. 영화가 틀렸다고 쓰는 것, 표를 사지 않는 것, 남에게 보지 말라고 권하는 것까지가 비판이다. 배우의 집앞에서 시위하는것 모두 좋다.

그러나 국회가 감독을 불러 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영화를 막으려는 지금의 소동이야말로 그 배경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들어 준다. 암시를 사실로 믿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영화를 금지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 자유도 있고 그 영화를 비판하고 불매하고 욕할 자유도 있다고 본다.

같은 잣대?

마지막으로 방향을 한번 뒤집어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누군가 공식 결론에 괄호를 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첨언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은 뇌물을 받은것이 명백하다. 배후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질문만 던진다. 유족이 살아 있고, 영화는 12세 관람가로 명절 극장에 걸린다.

지금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그때도 같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지금 상영 중단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때 창작의 자유를 꺼내 들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나는 양쪽 모두 자신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내 답은 둘 다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같은 강도로 비판받아야 한다. 이 영화는 옹호하면서 저 영화는 내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지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진영이다. 반대도 똑같다.

맺음

〈암살자(들)〉은 금지돼서는 안 되는 영화다. 동시에 박수받을 영화도 절대 아니다. 두 문장은 충돌하지 않는다.

괄호는 편리하다. 틀려도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질문할 자유에는 값이 하나 붙는다. 언젠가 자기 쪽을 향해 날아올 질문 앞에서도 같은 자유를 말해야 한다.

자유에는 괄호를 칠 수 없다.